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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한국은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개발해왔으며, 이런 특성은 한국인의 낙천주의, 소박하지만 풍부한 미적 감각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감각들은 예술, 문학, 건축, 생활, 주방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며 발달해 왔다. UNESCO는 이러한 한국의 오랜 전통을 가진 문화유산을 인정하여 3건의 세계무형유산과 4건의 세계기록유산의 총 7건의 한국문화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삼국 시대에는 중앙 집권적 귀족 사회가 형성되면서 왕족과 귀족 중심의 문화가 성행하였다. 불교를 수용하여 사상을 통합하였고 각 분야에서 다양한 불교 문화가 발전하였다. 통일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종합하고, 당 및 서역의 문화를 수용하여 고대 문화의 꽃을 피웠다. 발해는 고구려 문화의 기반 위에서 당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 문화를 이룩하였다. 과학과 기술 분야도 크게 발전하였다. 농업 기술을 향상시켜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천문학과 금속 공예도 높은 수준을 이룩하였다. 고대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의 모습과 멋은 고분과 건축, 조각, 문학 등에 많이 남아 있다.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중세 문화는 고대 문화의 기반 위에서 조상들의 노력과 슬기가 보태져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 유교가 정치 이념으로 채택 적용됨으로써 유교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으며, 후기에는 성리학도 전래되었다. 불교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가운데 불교 사상이 심화되고 교종과 선종의 통합 운동이 꾸준히 추진되었다. 중세의 예술은 귀족 중심의 우아하고 세련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건축과 조각에서는 고대의 성격을 벗어나 중세적 양식을 창출하였으며, 청자와 인쇄술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림과 문학에서도 중세의 품격 높은 멋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는 괄목할 만한 민족 문화의 창달이 이루어졌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역사서를 비롯한 각 분야의 서적들이 출판되는 등 민족 문화 발전의 기반이 형성되었다.성리학이 정착 발달하여 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여러 갈래의 학파가 나타났다. 불교는 국가에 의하여 정비되면서 위축되었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천문학, 의학 등 과학 기술에 있어서도 큰 발전을 이룩하여 생활에 응용되었고, 농업 기술은 크게 항상되어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켰다.
양난 이후 사회 각 분야의 변화와 함께 문화에서는 새로운 기운이 나타났다. 양반뿐만 아니라 중인층과 서민층이 문화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문화의 질적 변화와 함께 문화의 폭이 확대되었다. 학문에서는 양명학을 받아들였으며 사회변화를 반영한 실학이 나타나 개혁 추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천문학과 의학 등 각 분야의 기술적 성과들이 농업과 상업 등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서양 문물의 유입도 이런 발전을 가속화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우리 민족은 신석기 시대에 한반도로 진출하여 수렵 채취 생활을 하면서 방랑하다가, 농경 생활의 시작과 함께 수많은 씨족 사회를 이루며 살았다. 그 후 기원전 3~4 세기경 부터 철기 문화가 전래되어 생산력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영토가 확대되고 신분 제도가 견고해지기 시작했으며, 복식도 이에 상응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대륙 문화를 흡수하여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추었던 삼국 시대에는 우리 옷의 틀이 갖추어졌으며, 한반도의 기후에 맞는 의복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통일 신라, 고려, 조선에 걸쳐 점차 발전하였으며, 서민들의 복식은 왕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옷의 기본적인 형태를 그대로 지켜왔다.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갖고 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부터 면화재배가 확산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전기에 이미 목면(木棉)이 크게 유행하였다. 목면의 대량생산은 서민들의 의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왔으며, 방한복에 솜을 집어넣어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하였다. 전통적으로 서민들의 의생활은 여름에는 주로 삼베와 목면을 즐겨 입었고, 봄가을에는 목면을 즐겨 입었으며, 겨울에는 목면에 솜을 넣어 누빈 겹옷을 즐겨 입었다. 반면에 부유한 사람들은 여름에는 삼베와 모시옷을 즐겨 입었고, 겨울에는 명주에 솜이나 털을 넣어 누빈 옷을 즐겨 입었으며, 여름에는 옷이 몸에 착달라 붙지 않도록 '등잠'을 걸치고 '토시'를 낀 후에 겉옷을 입었다.
삼국 시대에 고구려인들은 육식을 즐겼으며, 백제와 신라인들은 술, 장, 젓갈을 발달시켰다. 고려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살생을 삼가하여 육식이 쇠퇴하고, 사찰에서 누룩, 국수, 소금, 차 등의 제조를 독차지했다. 고려 후기에 몽고군이 들어오자 육식이 활발해져 설렁탕, 순대등이 전해지고, 소주가 그들이 주둔했던 지역에서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이때에 식물성과 동물성 요리를 고루 먹는 오늘날의 식사법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와 함께 차 마시기가 쇠퇴하고, 생선회를 먹게 되었다. 이때 옥수수, 고추, 감자, 고구마 등이 미 대륙에서 들어와 식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 고추는 가루로 빻아 김치를 담그거나 고추장을 만드는 데 쓰이기 시작했고, 감자와 고구마는 흉년을 넘기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삼국 시대엔 대부분 초가였으나 일부에서 기와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궁궐, 사찰 등 공공 건축과 지배층의 살림집은 기와를 사용하였다. 줄곧 같은 모습으로 이어 내려온 초가집과 달리 기와집은 중국에서 전래된 건축술과 외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구조와 의장이 다양하게 발전하였는데,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낸 조선 시대의 상류 주택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춥고 찬바람이 불고 눈이 많이 내리는 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 주는 '온돌'이라는 난방시설을 사용하였고, 덥고 비가 자주 내리고 습기가 많은 여름을 지내기 위해서 바닥이 시원한 '마루'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추운 북쪽지방에서는 온돌방이 발달하였고, 더운 남쪽 지방에서는 마루가 발달되었다. 따라서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을 짓는 재료는 자연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흙, 돌 등을 활용하였고, 골격은 주로 나무를 사용하였고, 지붕은 나무를 기본으로 그 위에 풀을 덮거나 흙으로 구운 기와를 사용하였다.
최근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그리고 베트남에 걸쳐서 확대되고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가져오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음악에 의해 점차 확산 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처음에 중국어 사용 국가권에서 “What is Love?” 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가을동화”, “별은 내 가슴에”, “겨울연가” 그리고 “대장금” 까지 한국드라마에 대한 열기를 만들어냈고 이는 급속도로 주변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들 드라마의 방송 이후에 한국의 각 스타들을 위한 팬클럽이 형성되었다. 가령,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은 일본에서 최고의 스타로 부상하였다. 최근 가장 인기가 많았던,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궁중드라마 대장금은 한국의 전통의상이나 본초의학, 한국궁중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이 드라마에 대한 열광을 전문가들은 한국의 문화적 소프트웨어의 힘이라고 말한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실미도”나 “태극기휘날리며”와 같은 수백만의 티켓 블럭버스터를 탄생케 하였다. 또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 역시 한류의 인기를 한층 더 증가 시키고 있다.